정신을 차린 지혁은 진우의 등에서 내려 그와 나란히 걸었다. 걷는다기보다는 끌려가는 쪽에 가까웠지만, 한사코 제 발로 걷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인 추태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는지 대강 설명을 들었어도 여전히 정신이 없다.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 또렷하게 생각하기가 힘...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진우는 지혁과 함께 조직에서 관리하는 클럽을 방문했다. 수금 담당이야 따로 있지만, 정기적으로 영업장들을 돌며 현황을 점검하는 것은 보스가 직접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다. 문제는, 둘이서만 가자는 지혁의 고집이었다. 보스가 영업장을 방문할 때는 경호 역할을 할 조직원 서넛을 대동하는 게 기본이다. 경쟁 조직의 세력권과 가깝거나...
지혁은 오랜만에 꿈에서 삼촌을 만났다. 호칭만 삼촌일 뿐 실제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다. 그래도 삼촌은 지혁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이고, 그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삼촌은 아버지의 오른팔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스의 오른팔'이라고 추어올릴 때마다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냥 왼손이면 족...
조직이 망했다. 조무래기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무실은 한적했다. 불도 켜지 않고 어둑한 공간에 잠긴 채로 보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오른팔이자 행동대장이었던 진우가 불을 붙여줬다. 담배 끄트머리가 타들어가며 새빨갛게 명멸하는 가운데 보스는 한숨처럼 연기를 뱉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살 거냐?" "글쎄요, 이참에 손 씻고 남들처럼 건실하게 살아볼...
쓸쓸하다. 어릴 때처럼 가슴을 저미는 듯이 고통스러운 느낌은 아니다. 이제는 오래 묵은 병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 그래, 또 그럴 때가 왔구나, 가을이구나, 쓸쓸하구나. 갈비뼈 안쪽 어딘가가 뻥 뚫린 듯한 공동(空洞). 그 구멍을 채우려고, 허무를 메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내가 어디에 있건, 누구와 있건, 무엇을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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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편집자에게 보낼까, 라는 생각. 왜일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10번을 시도하고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하지만 의미란 일을 시작할 때 찾는 게 아니다.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두고 싶다는 뜻.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쓰고 싶다라. 그건 왜? 생각만 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또 생각을 하고, 글을 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소설가인가. 아니, 내가 한 번이라도 소설가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얼마나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 돈 안 받고도 좋아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리고 재능을 지닌 일.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세상에 영혼을 실현할 수 ...
이 책을 다운받은 건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한참을 열지 않았다. 글 쓰는 마음 같은 건, 내 속만 들여다보기에도 버거우니까. 그리고 쓰게 않게 된 지금에 와서야 책을 열었다. 과연 남들은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노트북이 꺼지기를 기다리면서 서문을 읽었고, 예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켜겠구나. 분명...
빅터 프랭클. 나치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다. 그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내 인생 책이다. (비슷한 내용을, 좀 더 날것의 형태로 접하고 싶다면 '희망 버리기 기술'을 추천한다.) 여기 보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 3가지 방법이 나온다. 1. 창작. 글이건 그림이건 음악이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내 안에만 존재했던 희미한 ...
오늘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접했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죽였다는 기사다. 물론 비극적인 얘기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른 비극도 무수히 일어난다. 백인이 흑인을 죽인 이야기는 최근에 본 것만도 2건이 더 생각난다. 백인 둘이 총을 들고, 멀쩡히 조깅하던 흑인한테 얘기 좀 하자고 말을 붙였다가 대화를 거부하니까 총으로 쏜 사건...
비가 철철 내린다. 글을 쓰기도 읽기도 좋은 날이다. 어제 10번째 출간을 했다. 출간 날에도 가슴이 무디어진 것에, 이제는 접을 때가 됐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내 소설 표지가 플랫폼에 올라온 것만 봐도 심장이 발끝으로 뚝 떨어질 것 같은 날들이 있었지. 이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출간하는 전 과정에서 가장 가슴이 떨렸던 것은, 4번째 이야기를 탈고하는...
여전히 탐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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